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버추얼 유튜버(버튜버) '가우르 구라'가 활동 종료(졸업)를 선언했다. 2020년 9월 데뷔 후 1년 만에 300만 구독자를 모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채 5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막을 내리게 됐다.
구라의 팬들 사이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도 나온다. 건강 문제로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여러차례 드러냈고, 방송을 몇 개월 단위로 쉬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해 라이브 방송을 단 36번, 총 방송 시간은 약 100시간에 불과했다. 그녀와 같은 홀로라이브 프로덕션 멤버들이 매주 약 4회, 총 10시간 이상 주기적으로 방송한 것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치다.
일부 팬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버튜버 업계 전반에선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상당수다. 구라는 앞서 말했듯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버튜버이며, 특히 버튜버의 본산인 일본을 넘어 영미권의 버튜버로서 성공을 거둔 첫 사례로서 상징성을 가진 버튜버다. 개인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것과 별개로 '졸업'을 통해 아예 그룹을 떠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영미권에서 지속되온 '버튜버 졸업 파동'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의견도 적잖이 나온다. 홀로라이브 영미권 지부에선 구라 외에도 그녀의 동기 '아멜리아 왓슨'이나 2기 멤버인 '나나시 무메이', '세레스 파우나' 등이 2024년부터 최근까지 연달아 무기한 활동 중단 혹은 졸업을 선언했다.
홀로라이브와 더불어 버튜버 분야의 양강으로 꼽히는 니지산지에서도 2024년 초부터 영미권 멤버들이 줄줄이 졸업하는 '엑소더스'가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석연찮은 공식 입장 발표와 연이은 주가 폭락이 논란으로 번지자 운영사 애니컬러의 대표가 유튜브로 공개 사과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두 회사의 영미권 멤버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마무리하는 이유에 대해선 '모회사와 구성원들의 문화 차이'가 주로 거론된다. 애니컬러와 홀로라이브의 모회사 커버는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돼있다. 영미권 그룹 설립 초창기 사업이 성장할 때는 문화 차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산업이 성숙기에 이르자 문화 차이, 의견 차이가 부각된 끝에 '갈라서기'를 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징성 있는 버튜버들의 졸업이라는 흐름에 있어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세계아이돌과 더불어 국내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스텔라이브의 원년 멤버 '아이리 칸나'가 지난해 12월, 한국의 마지막 1세대 버튜버로 꼽히는 스마일게이트의 '세아 스토리'가 올 3월 연달아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졸업 외에도 여러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추세다. 앞서 언급한 이세계아이돌은 최근 데뷔곡 'RE : WIND'의 저작권 분배 문제, '이세계페스티벌' 오프라인 공연 일정이 당초 3일에서 티켓팅 중 2일로 축소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버튜버 업체들이나 업계인들 사이에 '멤버 빼가기' 논란, 나아가 금전적 손해를 동반한 사기를 이유로 한 법적 대응 등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버튜버 산업은 본질적으로 엔터테인먼트·콘텐츠 산업이다. 음악이나 만화, 영화, 게임 등 기존의 콘텐츠 업계는 하나같이 상징적인 인물이나 불후의 대표작들이 존재했다. 이들을 추종하는 팬들이 모이고, 후발 주자들도 저마다 성과를 거두며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겨나는 '낭만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낭만의 시대 뒤에는 항상 급격한 성장에 뒤따르는 다양한 갈등과 문제의 시대가 도래했다. 여러 업계인들이 시행 착오를 겪고, 심지어는 업계 전반에 걸쳐 암흑기를 겪으며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 잡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최초의 버튜버로 꼽히는 '키즈나 아이'가 데뷔한지 8년이 넘게 흘렀다. 버튜버 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들은 '낭만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업계인들은 이제 개별 버튜버들의 성장, 단편적인 성과를 넘어 업계 전체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한 방향성 또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