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에는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만화책을 모아놓고 불을 지르며 '불건전문화 퇴치'를 외치곤 했다. 신생 놀이 문화가 이와 같은 '분서갱유'를 당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반복돼온 장면이다. 현행 게임법 32조 2항 3호와 이에 따른 게임 검열 또한 이러한 분서갱유의 연장선인 만큼 철폐돼야 마땅하다."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제32조 제2항 제3호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인들의 대표이자 게임 전문 유튜브 채널 'G식백과'를 운영하고 있는 김성회씨가 8일 청구를 앞두고 연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 소재 헌법재판소 정문에선 이날 오전 11시 심판 청구 대표단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성회씨 외에도 청구 소송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이철우 문화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와 법률 자문단, 이철우 변호사가 협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게임이용자협회 관계자 등이 현장에 함께했다.
대표단에 따르면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위해 지난달 5일부터 온라인으로 서명인을 모집, 총 21만751명의 서명을 확보했다. 한국 헌법 역사상 최다 청구인 기록이었던 2008년 '미국산 쇠고기·쇠고기 제품 수입위생 조건 위헌확인'에 참여한 9만5988명의 2배를 넘어선 수치다.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심판 청구 서명을 독려했던 김성회씨는 "당초 목표치를 10만명으로 잡고 있었는데 하루 만에 목표치를 넘은 것, 21만명이 넘게 참여한 것 모두 예상 이상의 결과"라며 "게임을 향한 검열의 수위를 타 콘텐츠와 동등한 수준으로 낮춰 달라는 게이머들의 열망이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 사례"라고 평했다.
게임법 제32조는 불법게임물의 유통을 금지하는 조항으로, 2항 3호는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의 제작, 반입을 금지하는 항목이다.
이철우 변호사는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는 모호한 이유로 게임의 출시를 금지하는 것은 영화, 드라마, 웹툰 등 여타 콘텐츠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게임 산업만의 고유 검열 기준"이라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 문화 향유권을 제한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해 3월 개정 시행된 문화예술진흥법에서 게임이 문화예술의 범주에 포함됬다는 점 등을 들어 "게임이 문화예술이자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인정받는 시대 인식 변화와도 맞지 않는 조항"이라며 "문화예술진흥법에서 보장하는 게임업계인들이 '창작의 자유' 또한 침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법에 의한 검열 철폐에 대해 '음란물'이나 '폭력물'이 난립할 우려가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성회씨는 이에 관해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는 인정한다"면서도 "현행 조항은 청소년 이용 불가 뿐 아니라 '등급 거부'를 통해 서비스 자체를 차단할 수 있어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일본의 스파이크 춘소프트가 2017년 출시한 밀실 살인 추리 게임 '뉴 단간론파 V3'를 게임법 32조 2항 3호를 근거로 등급 분류 거부, 유통을 금지했다. 이 게임은 한국 외 주요 시장에선 15세 혹은 16세 등급으로 출시됐으며 '단간론파' 시리즈 전작의 경우 청소년 이용불가 등급으로 국내 유통된 사례가 있다.
김성회씨는 이 게임이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인기작으로 떠오른 '오징어 게임'과 비슷한 수위의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오징어게임이 진짜 '게임'이었다면 게임법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며 "게임의 검열을 철폐하자는 것이 아니라 영상 등 타 콘텐츠와 동등한 수준의, 공정한 규제를 받게 되길 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헌법 소원이 인용돼 게임법 제32조 제2항 제3호가 위헌으로 결론날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관련 업무에 있어 영향을 받게 된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이에 관해 "본 위원회는 법률에 의해 불법 게임물의 등급 분류 거부를 하도록 되어있는 기관"이라며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존중할 것이며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